아디다스 스피드팩토리 접는다: 실패일까 유예일까

아디다스는 지난 2015년 새로운 운동화 제조 시설인 ‘스피드팩토리(Speedfactory)’를 발표하고 2016년 독일 안스바흐, 2017년 미국 애틀랜타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아시아의 공장에서 낮은 노동비용으로 대량생산하는 체계가 신발 산업에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아디다스가 스피드팩토리를 통해 내세운 것은 1) 수요가 많은 선진국에서 생산해 빠르게 공급하는 물류 개선, 2) 로봇을 통한 생산 자동화로 비용 부담 해소, 3) 3D 프린팅 등을 활용한 맞춤화 생산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공장 설립에서 3년이 지나 아디다스는 두 곳의 스피드팩토리를 2020년 4월 폐쇄하고, 여기에 쓰인 기술은 아시아 지역의 공급사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피드팩토리 폐쇄의 구체적인 이유 대신 아디다스는 “공급 업체의 기존 기술 역량과 스피드팩토리에서 개발된 새로운 생산 방법을 조합함으로써, 향후 신발 모델의 다양한 변형이 가능해지는 등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생산 시간이 짧아져서 소비자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디다스는 스피드팩토리를 통해 테스트한 생산 공정을 운동화뿐만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에도 적용하는 동시에, 제조 공정의 개선을 위한 개발, 테스트, 협력 등 작업을 독일 내에서 지속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와 관련해 외신에서는 스피드팩토리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새로운 생산 체계로 자리잡는데 한계를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현지 생산에 따른 물류 개선 및 생산 자동화의 효과가 크지 않고, 유연한 맞춤 생산 또한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인데요.

아디다스의 연간 신발 생산량이 4억 켤레인데 비해, 독일 스피드팩토리의 생산량은 50만 켤레 규모로 알려졌으니 1% 남짓한 비중입니다. 미국의 스피드팩토리를 합쳐도 애초에 대량생산을 대체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쿼츠(Quartz)는 스피드팩토리의 난제 중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신발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독일 스피드팩토리의 경우 천 재질의 윗창과 수지 소재의 부스트(Boost) 중창만 만들 수 있어서, 가죽이나 고무 등 다른 소재를 사용한 신발은 생산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로봇의 생산 자동화가 단기간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로보틱스 공장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생산 목적이 바뀔 경우 로봇 팔이나 비전 시스템 등을 재조정하고 라인을 변경하는 것이 사람을 재훈련시키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블룸버그(Bloomberg)는 ‘완전한 개인맞춤(full personalization)’의 기술적인 가능성과 별개로 시장성이 부족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운동화를 만드는 과정은 여러 장의 조각을 곡면으로 이어붙이는 작업이어서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데, 3D 스캔으로 발 모양을 측정한 후 여기에 꼭 맞는 신발을 설계하고 만들려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맞춤 생산’과 ‘빠른 생산’을 모두 만족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일텐데, 블룸버그는 “미리 준비된 몇 종류의 구성요소 가운데 잘 맞는 것을 선택해 신발을 완성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enzit: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는 스마트 공장과 4차 산업혁명의 사례로 여러 곳에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스피드팩토리의 실패’가 ‘스마트 공장의 실패’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이렇게 헤드라인을 붙인 기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둘은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마트 공장은 하나의 기술이나 솔루션이라기보다는 ‘비전’ 또는 ‘지향점’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합니다. 본격적으로 소개된지 몇 년 지나지 않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스피드팩토리는 그 와중에 이뤄진 ‘실험’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실험과 시도가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스마트 공장은 자동화가 아니며, 여러 분야의 복잡한 기술이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스피드팩토리의 폐쇄는 새로운 제조를 위한 기술이 대량생산을 대체할 만한 시장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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