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가져온 팬데믹은 전세계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보건 및 경제 위기를 불러 왔지만, 역설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변화는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록다운(lockdown)으로 학교와 직장이 폐쇄되고 이동이 막히면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급증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화상회의 솔루션인 줌(Zoom)이 최대 테크 수혜주로 떠오르기도 했지요. 올해 2월 말부터 3월 말까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이 30% 증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는데, 이는 종전의 인터넷 트래픽 증가율보다 10배가 높은 수치입니다.
지난 10년간 테러, 브렉시트, 무역갈등은 전세계적인 가치관과 행동방식의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무실이 없어지고 극도로 분산된 모바일 근로자들이 존재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팬데믹으로 더 빨리 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PTC의 짐 헤플만 CEO는 지난 6월 진행된 연례 사용자 이벤트 ‘라이브웍스 2020’의 기조연설을 통해 “팬데믹이 지나간 후에도 달라진 업무 방식이 더 많이 도입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뉴 노멀 시대에 대응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PTC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9년 11월 클라우드 CAD 기업인 온쉐이프(Onshape)를 4억 7000만 달러(약 558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2013년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씽웍스(ThingWorx)를 1억 1000만 달러, 2015년 증강현실(AR) 플랫폼 뷰포리아(Vuforia)를 6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PTC는 CAD/PLM에서 IoT와 AR 중심으로 기업의 체질을 바꾸어 왔는데요, 이들 인수 사례와 비교하면 온쉐이프의 M&A는 규모가 큰 편입니다.
클라우드 CAD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PTC는 온쉐이프의 인수가 클라우드 CAD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온쉐이프는 PTC의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쳐 멀티유저 및 멀티테넌시(multi-tenancy)를 특징으로 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PTC는 온쉐이프의 기술에 기반한 ‘아틀라스 플랫폼(Atlas platform)’을 통해 장기적으로 PTC의 모든 주요 소프트웨어에 대해 SaaS 버전을 제공할 계획이다.”
짐 헤플만, PTC CEO

디지털 기술은 출퇴근이나 출장에 드는 시간 소비를 막으면서 가상 공간에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재택근무가 모든 산업과 기업, 근로자에게 똑같은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클라우드와 SaaS에 힘입어 사무직이나 지식 근로자의 대다수는 재택근무로 잘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도 모니터 앞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고,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사무실 워크스테이션에 저장하고 있는 엔지니어, 공장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생산 근로자, 고객사를 방문해 서비스를 해야 하는 지원 인력 등 현장 근로자(frontline workers)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전세계 근로자의 약 75%가 생산, 설치, 현장 서비스 등을 수행하는 현장 근로자이다. 이런 사람들은 재택근무로 쉽게 전환할 수 없으며, 디지털화가 큰 역할을 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이 뉴 노멀 시대에 대응해 유연성과 이동성을 높이고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핵심 스킬을 갖추어야 한다.”
짐 헤플만, PTC CEO
헤플만 CEO는 뉴 노멀 시대에 제조산업이 갖춰야 할 네 가지 핵심 스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제품 개발의 이동성(mobility)과 탄력(resiliency): 클라우드와 SaaS는 CRM, ERP 등 많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바꿔놓았지만, 제품 개발은 온프레미스가 주류를 차지하는 몇 안 되는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분야입니다. 사무실의 큰 워크스테이션에 엔지니어링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어서, 재택근무로 전환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도 클라우드와 SaaS를 적극 도입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유연하면서 혁신적인 공급망: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파트너가 쉽게 합류하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세계에 걸친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 전체가 데이터를 문제 없이 교환하기 위해서는 CAD든 PLM이든 같은 버전의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공급망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이 동시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점도 골칫거리입니다.
“클라우드는 온프레미스 소프트웨어와 완전히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설치나 유지보수가 필요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고, 파일을 주고받을 필요 없이 모든 사람이 최신 버전의 소프트웨어와 최신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짐 헤플만, PTC CEO

3. 현장 근로자의 연결성(connectivity)과 협업: 전세계 약 27억 명의 현장 근로자가 디지털화의 이점을 누리려면, 이들이 일하는 실제 현장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옮겨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PTC가 내세운 것이 증강현실(AR)입니다.
“줌이 화면 속의 콘텐츠를 가지고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뷰포리아 초크(Vuforia Chalk)는 실제 환경에 매핑된 디지털 콘텐츠로 협업이 가능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콘텐츠를 종이 위에 인쇄한다면, 뷰포리아 스튜디오(Vuforia Studio)는 실제 세계의 객체나 장소 위에 디지털 콘텐츠를 게시할 수 있다. 유튜브가 영상으로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처럼, 뷰포리아 엑스퍼트 캡처(Vuforia Expert Capture)는 실제 세계에 디지털 매뉴얼을 덧씌울 수 있다. 이처럼 AR은 현장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짐 헤플만, PTC CEO

4. 제품과 공장의 원격 모니터링: 재택근무와 여행 금지, 감염자 격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기업은 제한된 인력으로 운영을 지속해야 합니다. 헤플먼 CEO는 사물인터넷(IoT)이 원격 모니터링과 원격 서비스를 통해 기업의 업타임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 인력이 현장에 방문해 서비스를 할 때 비용과 시간이 드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럽지만, 록다운과 이동 금지가 이뤄진 팬데믹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PTC는 기업이 서비스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로 IoT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더 적은 전문 기술 인력과 출장 비용으로도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IoT와 인공지능(AI) 솔루션은 애널리틱스 기반의 작업 플래닝을 구현해 종이 기반의 수작업 프로세스를 없애고, 운영의 실시간 가시성을 확보함으로써 OEE(설비종합효율)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
짐 헤플만, PTC CEO
짐 헤플만, PTC CEO
PTC는 클라우드, IoT, AR 등 지난 몇 년간 추가한 기술을 자사의 전통적인 자산인 3D 기술과 결합해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비전을 선보였습니다.
3D CAD와 PLM은 제품을 디지털 데이터로 가상화합니다. IoT는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 중에서 특정 시점의 인스턴스를 가상화합니다. AR은 현장 업무의 모니터링, 제어, 최적화를 통해 현장의 근로자를 가상화합니다. PTC의 공간 컴퓨팅은 CAD, PLM, IoT, AR에서 얻은 데이터를 결합하고, 여기에 비전 카메라를 통해 얻은 작업 현장의 정보까지 통합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PTC가 보스턴 본사에 마련한 ‘리얼리티 랩’은 이런 비전을 실험하는 장소입니다. 이 곳에 설치된 뎁스 센싱 카메라는 기계와 사람을 포함하는 실제 공간의 3D 디지털 데이터를 1초에 몇 차례씩 만들어냅니다. 디지털화된 공간 안에서 VR 모델을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있고, 공간 분석을 통해 사람과 기계의 작업을 관찰하거나 작업 프로세스를 최적화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공간 컴퓨팅에서 얻는 강력한 인사이트는 제품, 사람, 프로세스, 공간에 걸쳐 퍼포먼스를 높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준다. 공간 컴퓨팅은 기업의 프로세스에 관련된 모든 자산과 근로자를 관리함으로써, 전체 업무 공간을 모니터링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론이자 물리-디지털 융합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짐 헤플만, PTC CEO
이 글은 캐드앤그래픽스 2020년 7월호의 기사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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